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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천선란

panda-zip 2024. 11. 17. 10:36

《이끼숲

천선란, 2023

자이언트북스

279p

   ★ 

출처 : 교보문고

 
이끼숲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메모로부터 출발한 이야기 『천 개의 파랑』(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에서, ‘목놓아 울다 문득 나무와 들풀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누군가의 슬픔을 상상했던 날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나인』(SF어워드 장편 부문 우수상 수상작)까지, 천선란의 이야기는 어떤 바람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에 공명하며, 독자들은 그를 ‘2022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한 것일 테다. 만일 당신이 지금 이 세계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면, ‘구하고 싶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란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살고 싶다’는 강렬한 생존 욕구만큼이나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구하려는 의지가 커진 듯하다. 아마 이 마음은 출구 없이 꽉 닫힌 이 세계에 작용하는 압력에 비례하여 더욱 간절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면서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끝내 구하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뚜렷하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 작품이 이야기의 세계에 존재해온 ‘구원 서사’라기보다, 말 그대로 이야기의 안팎에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정말로 구하고 싶다는 작가의 강력한 바람으로 쓰여졌음을 짐작게 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존재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결코 눈 돌리지 않는 작가가 우리와 함께 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 이로 인한 안도감과 든든함으로 독자들에게 『이끼숲』을 전한다.
저자
천선란
출판
자이언트북스
출판일
2023.05.02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 세 이야기로 이루어진 소설.

 

바다눈

 '마르코'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르코는 경비원이다. 일을 하던 중 '은희'라는 여자아이의 노랫소리에 이끌리게 된다. 그와 함께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세상을 넓혀간다. 아바타에게 목소리를 파는 이야기가 나와서 설마설마 했는데 은희가 목소리를 팔았다는 것을 알고 나도 마음이 너무 아팠다. 

노동자들의 파업 또한 등장한다. 판타지 세계에서조차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한다는 점이 좋았다. 

 

우주늪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늘 방 안에 갇혀 있어야 했던 '의조'. 의조는 나가고 싶은 마음에 바깥의 눈에 띄지 않게 배관 통로 속에서 이동한다. 의조는 글조차 알지 못하는데, 치유키가 글을 알려준다. 배운 것들을 활용해 배관 안에 이정표를 만든다. 그 이정표의 밑에 '고마워'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마치 내가 의조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의조와 비슷하게 지워진 아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끼숲

 '소마'는 사랑하는 '유오'를 잃고 매일같이 집에 틀어박혀만 있다. 소마의 친구들은 유오의 클론이 폐기된다는 소식을 소마에게 전하고, 이를 훔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유오의 클론을 훔친 소마는 최상층인 온실로 향한다. 온실의 정체를 마주하고 당황하지만, 지상으로 나가는 방법을 듣고 숲으로 향한다. 소마의 친구들이 모두 힘을 합쳐 유오의 클론을 훔쳐내는 그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유오에게 숲을 보여주겠다는 그 소망 하나로 힘들고 지쳐도, 친구들이 하나씩 잡혀가도 눈물을 참고 꿋꿋하게 위로 향했다. 유오의 희망이 유오를 구원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유오의 클론은 마지막에 소마와의 추억을 이야기 한다. 그 클론은 진짜 유오라고 부를 수 있을까? 《노랜드》에 나온 단편 '옥수수밭과 형'의 내용과 비슷하다. 기억을 가지고 있는 복제인간이 과연 원래 그 사람이라 볼 수 있을까? 노랜드와 이끼숲을 읽은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도 결론을 못 내리겠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당사자라면, 그렇다고 믿고 싶을 것 같다. 나와 그 사람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그 존재를 차마 가짜라고 내칠 수는 없을 것이다.